우신이 떠난 후 다솜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깨어났다. 꼬박 하루를 자고 난 뒤였다. 일어난 그녀가 처음 한 일은 시환의 편지를 지퍼 팩 안에 담아 서랍 깊숙이 담아두는 것이었다. 바람이라도 훔쳐갈세라 혼자 있는 집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여 편지를 숨겨두었다. 그가 살아 있으니 이제 그녀도 살아야 했다. 우선은 다시 직업을 구했다. 나중에 시환이 돌아와 상...
또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몇 개월이 흘렀다. 멍한 눈으로 눈을 떴다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그저 흘러가고 있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디 있는 걸까? 우신이 떠나고 어떻게든 그의 소재지를 알아보려 그녀는 우신의 연락처를 들고 경찰을 찾아가 폭행을 당했다며 신고를 했다. 여태껏 우신이 보낸 계좌도 모두 모아 경찰서에 가...
눈을 뜬 다솜의 앞에는 우신이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나버렸구나.' 생각한 다솜은 그냥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당신 나 먼저 치려고 했잖아. 난 미리 알고 방어한 것뿐이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다솜은 우신을 향해 짐승처럼 소리쳤다. “당신 변태야? 왜 여기서 나랑 농담이나 따먹고 있는데. 시환이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걔도 사람이야. 지...
두 달 만에 문을 연 공방은 그새 녹슨 철문처럼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겨우내 한기를 한 데 모아 품고 있는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난방기를 돌렸다. 얼어있던 히터는 한참 차가운 바람을 쏟아내고 난 후에야 뒤늦게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을 내보냈다. 그녀를 주시하며 뒤따라오던 그가 공방에 들어서자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다솜의 부모는 어린 나이에 그녀를 가지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결혼한 케이스였다. 그 당시 부모는 모두 18세였다. 모든 것이 마냥 소꿉놀이 같았던 두 아이는 아이를 낳겠다고 우겼고, 걱정스러웠지만 한 편으로는 책임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던 어른들은 둘을 결혼시켰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어머니 집에 의탁해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배가 불러오기 시...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은 아침, 그녀는 약간의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아직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는 틈을 타, 그를 외출복으로 갈아 입히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태웠다. 공방에 가기 위해서다. 공방은 그의 꿈이 형상화된 곳이었다. 미대를 다니며 유학을 준비했던 그는 부모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모든 것을 놔버렸다. 학업도 꿈도 미래도 자신이 ...
그녀는 우선 밥을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냉장고로 걸어가 안을 들여다보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리를 못 하는 그녀 대신 언제나 냉장고 정리는 그의 담당이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반찬들은 그의 단정한 인상만큼이나 깔끔했다. 꼼꼼하게 사온 날짜를 메모해 놓은 비닐 팩 안에는 두 달 내 방치되어 잔뜩 수분이 빠진 야채들이 다시 돌아온 그의 얼굴처럼 메말라 ...
다솜은 생전 그의 바람을 거스르면서까지 매장을 고집했다. 마음 같아서는 잠들어 있는 것 같은 그를 집으로 데려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싶었지만 땅에 그 사람을 묻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자는 듯 눈을 감고 있는 마지막 그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다시 눈을 뜨고 자신을 향해 미소 지어줄 것만 같았다. 죽어있는 사람의 몸은 죽음을 느끼게 할 수...
흙더미를 뒤집어쓴 시환이 문 앞에 서있었다. 짙게 퍼진 눈썹 사이에 이제는 하얗게 말라붙어가는 흙가루들이 떨어져 가늘고 긴 눈 위로 계속해서 떨어졌지만 그 어둡고 깊은 눈은 한 번을 깜빡이지도 않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길게 뻗은 콧날 끝에는 들숨 날숨의 흔적은 사라져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 또한 호흡을 상실한 채 멈춰있었다. 두 달 전 다솜은 차가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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