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지나지 않아 수색은 종료되었고 다시 조용해진 산속에서 석산은 눈을 떴다. 자신이 죽을 때와 같은 차가운 달밤. 자신이 잠에서 깨어난 것인지 아직도 꿈속인 건지 석산의 머릿속은 뿌연 안개가 끼어 모든 기억을 가리고 있었고 그 중 다정의 얼굴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석산은 다정의 집으로 향했다. 마루에 앉아 멍하니 달을 보고 있던 다정은 부스럭거리는 소리...
석산이 여자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고 난 후였다. 석산은 시장에 있는 설렁탕 집에서 하숙 했는데 집 주인아주머니의 심부름으로 마을 서당의 선생 댁에 자주 설렁탕을 배달 나갔었다. 아직 작은 시골 마을이라 학교가 들어서지는 못했지만, 일본에서 유학하고 온 선생이 아이들에게 신식교육을 가르치고 있었다. 전쟁 통에 식구를 모두 잃은 것인지 나이...
우신의 이름은 김석산이었다. 그저 전쟁 통에 부모 없는 아이들이 모이면 번호표 나눠주듯 흔하게 주어지는 의미 없는 이름 중 하나였다. 석산은 기억이 시작되는 때부터 혼자였다. 누가 준 지도 모르는 이름 하나를 덜렁 들고 여기저기를 떠돌며 날품팔이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왜소한 체격에도 힘이 남달랐던 석산은 비록 떠돌이 신세였지만 배를 곯는 일은 없었다. 시...
일을 마치고 돌아온 다솜은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온종일 앉을 새도 없이 휘몰아쳐 일하고 조용한 집 안에 혼자 있자니 지치기도 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철에는 아이스커피를 사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원래 주 업무는 아니지만 가게에 나와 일손을 거들었다. 그녀가 맡은 일은 만들어진 커피에 뚜껑을 덮고 빨대를 꽂고 주문한...
환생체가 되고 난 후 우석은 다시 세상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생을 만끽하는 여흥이 아닌 같은 환생체를 찾아다니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떠났다. 처음 일족의 어른들은 우석의 여행을 반겼다. 우림 같은 특별한 능력을 갖춘 아이를 더 많이 찾아낸다면 우리는 정말 인간답게 신처럼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모두가 들떴다. 우석은 그 들뜬 마음을 싸잡아...
“이게 다 뭐야?” 문 앞에 서 있는 우신을 제치고 들어온 우림은 방을 둘러보더니 물었다. “원래 시환이가 가죽 공방을 했어. 시간 날 때마다 취미생활이나 하라고 만들어줬지.” 우신이 답했다. “살판났네, 취미생활도 하고.” 쌓여있는 가죽 더미를 들춰보며 우림이 말했다. “뭐가 불만이야?” 우신과 역할을 바꾸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우림이 요새...
그 날부터 우림은 우석의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이때 우림이라는 이름도 받게 되었다. 집 안을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여느 소녀들과 다르지 않았다. 마치 죽었던 적이 없었던 아이처럼 원래 가족이었던 것처럼 우림은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우석은 우림이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할 때까지 당분간 세상을 돌아다니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자리를 ...
그 날 이후, 우석은 장남이 잠이 들 때마다 우림을 찾아왔다. 일족이 어떻게 번영해 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줬다. 우석의 말을 들으며 우림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에 관해 묻고 그 답변을 받고 나면 정말 자신은 더는 인간이 아닌 게 되는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집안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들이 더욱더 흉측한 모습으로 커져만 가던 ...
사내는 우석이었다. 우석은 환생체 집안의 사람이었다. 언제부턴가 집안에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 돌아왔다. 집 안에 저주가 걸렸다며 소문이 퍼졌고 그때마다 거처를 옮기느라 집안 식구들이 모두 떠돌이 신세였다. 돌아온 시신을 불에 태우기도 하고 바다에 던지거나 땅에 묻기도 했지만 돌아올 사람들은 돌아왔다. 어느 날 우석의 조상은 생각했다. '이것이 저주가 아...
우림은 소위 귀족 가문의 막내딸이었다. 손이 넘치는 집안이었지만 유독 딸이 귀했던 터라 고명딸의 탄생은 집안의 경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영특했던 우림은 글, 그림 할 것 없이 다방면에 재능을 보였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집안을 빛냈을 거라는 어른들의 농담 섞인 칭찬을 들으며 꽃같이 사랑 받고 자라났다. 영특하고 빛나는 아이라는 의미의 ‘준희’라는 본명...
시환의 숙소까지 가볍게 산책을 하며 길을 걷던 우신은 잊고 있는 줄 알았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두려운 짐승을 맞닥뜨렸을 때의 공포심이 느껴지던 그 눈빛, 다가가려 뻗은 손을 내리치고 쏘아붙인 경멸의 눈빛. 타인의 뒤에 숨어 매질했던 그 차가운 눈빛. 생각을 날려버리듯 우신은 거칠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을 열자 소파에 누워 천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
깊이를 알 수 없는 넓은 저택, 그것을 두르고 있는 벽처럼 높은 담 앞에 우신은 차를 세웠다. 트렁크에서 묵직한 상자를 들어 내리더니 경비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오다가 간식거리 좀 사 왔어요.” 경비 초소에 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대여섯 명의 건장한 사람들이 각자 모니터를 보거나 장비를 점검하는 등의 일을 하며 모여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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